해인사 가야총림 방함록 서(序)
1946년(丙寅年) 10월 15일
우리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오시어 특히 이 일[此事]을 외치시되, 다만 말하기 전에 매처럼 돌진하고 글귀 밖에서 붕새처럼 치면서, 바로 빼어나고 높이 뛰어올라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겼을 뿐이다. 그만한 일을 해내려면 그만한 사람이라야 한다. 만약 그만한 사람이라면 그만한 일이 어려울 게 무엇인가.
여기에 뜻을 둔 사람은 인정(人情)에 얽매이지 말고, 사자(獅子)의 힘줄과 코끼리의 힘으로 판단하여 지체없이 한칼로 두 동강을 내야 한다. 용맹하고 예리한 몸과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비린내 나는 장삼과 기름기에 전 모자를 벗어 던지고, 천지를 덮는 기염을 방출(放出)하고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는 위광(威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니, 그래야만 그와 벗할 수 있고 또한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하고 여울에 거슬러 오르는 고달픈 물고기나 갈대에 깃든 약한 새나 참죽나무에 매인 여윈 말이나 혹은 말뚝을 지키는 눈 먼 나귀 따위가 된다면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 그러므로 다만 활구(活句)를 참구(參究)하고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활구 밑에서 깨달으면 영원히 잊지 않겠지만, 사구 밑에서 깨달으려 하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 만약 불조(佛祖)와 더불어 스승이 되려면 모름지기 활구를 밝혀 가져야 할 것이다.
曹溪 曉峰 學訥 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