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9.

육근.육경.육식

육근.육경.육식




청정도론중 명색에 대한 설명

정신.물질을 파악함





근본물질(四大),18가지 요소(界),12가지 감각장소(處), 무더기(蘊)들을 통해서 구분함







만약 정신의 법들이 확연해지지 않으면







15. 만약 그가 이런 방법으로 물질을 파악하고 정신을 파악할 때 정신이 미세하기 때문에 확연해지지 않으면,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명상하고 마음에 잡도리하고 파악하고 구분해야 한다. 차츰 물질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얽힘이 풀리며 아주 선명하게 될 때 그것을 대상으로 가진 정신의 법들도 스스로 분명하게 된다.







16. 예를 들면, 눈을 가진 자가 더러운 거울 표면에서 얼굴의 영상을 보고자 하나 영상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는 영상을 볼 수 없다 해서 거울을 던져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계속해서 문질러 닦는다. 거울이 깨끗해졌을 때 영상은 스스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참기름을 원하는 자가 깻묵을 통에 넣고 물을 뿌린 뒤 한두번 눌러짜서 기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깻묵을 던져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더운 물을 뿌리고 짜고 누른다. 이렇게 할 때 맑은 기름이 나온다. 물을 정화하려는 자가 까따까 열매를 쥐고 병속에 손을 넣어 한 두 번의 마찰로 물이 정화되지 않는다고 까따까 열매를 던져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마찰한다. 이렇게 할 때 탁한 진흙은 가라앉고 물이 깨끗해지고 맑아진다. 이와 같이 비구는 포기하지 말고 오직 물질을 계속해서 명상하고 마음에 잡도리하고 파악하고 구분해야 한다.







17. 차츰 물질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매듭이 풀리며 더욱 분명해질 때 그를 방해하던 오염원들이 가라앉고 진흙이 침전된 윗부분의 물처럼 그의 마음은 맑아진다. 물질을 대상으로 가진 정신은 스스로 분명해진다. 이와 같이 사탕수수 짜기, 자백을 받기 위해 도적을 매질함, 소 길들이기, 버터를 내기 위해 커드를 저음, 생선 요리 등의 다른 비유를 통해서 이 뜻은 분명해질 수 있다.







세가지 양상으로 정신의 법들이 확연해 짐







18. 이와 같이 물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주 분명해질 때 그에게 정신은 다음의 세 가지 양상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즉 ①감각접촉을 통해서 ②느낌을 통해서 ③알음알이를 통해서 드러난다.







19. 어떻게?



①감각접촉을 통해서:어떤 자는 땅의 요소는 견고한 특징을 가진다. 라는 등의 방법으로 요소들을 파악할 때 제일 먼저 그 대상에 닿는 감각접촉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와 관련된 느낌은 느낌의 무더기로, 그와 관련된 인식은 인식의 무더기로, 그와 관련된 의도는 감각접촉과 함께 상카라의 무더기로, 마음은 알음알이의 무더기로 확연히 드러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에서 견고한 특징을 가진 것은 땅의 요소고...들숨날숨에서 견고한 특징을 가진 것은 땅의 요소다’라고 파악할 때 제일 먼저 그 대상에 닿는 감각접촉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와 관련된 느낌은 느낌의 무더기로, 인식은 인식의 무더기로, 감각접촉과 함께한 의도는 상카라의 무더기로 , 마음은 알음알이의 무더기로 확연히 드러난다. 이와 같이 감각접촉을 통해서 정신의 법들이 확연히 드러난다.







20. ②느낌을 통해서: 어떤 자는 ‘땅의 요소는 견고한 특징을 가진다’라고 요소들을 파악할 때 그것을 대상으로 가지고 그 맛을 경험하는 느낌이 느낌의 무더기로 확연히 드러난다. 그와 관련된 인식은 인식의 무더기로, 그와 관련된 감각접촉과 의도는 상카라의 무더기로, 마음은 알음알이의 무더기로 확연히 드러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에서 견고한 특징을 가진 것은 땅의 요소고...들숨날숨에서 견고한 특징을 가진 것은 땅의 요소다’라고 파악할 때 그에게 그것을 대상으로 가지고 그 맛을 경험하는 느낌이 느낌의 무더기로 확연히 드러난다. 그와 관련된 인식은 인식의 무더기로, 그와 관련된 감각접촉과 의도는 상카라의 무더기로, 마음은 알음알이의 무더기로 확연히 드러난다. 이와 같이 느낌을 통해서 정신의 법들이 확연히 드러난다.







23. 이와 같이 물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주 분명해졌을 때 그에게 정신의 법들은 세 가지 양상으로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물질을 파악하는 것이 선명하게 된 사람만이 정신을 파악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면 안된다. 만약 한가지나 두가지의 물질의 법들이 분명해졌을 때 물질을 버리고 정신을 파악하기 시작하면 명상주제를 잃고 만다. 이것은 마치 흙의 까시나의 수행에서 설명한 산 속의 소의 비유와 같다. 그러나 물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주 선명하게 된 뒤에 정신을 파악하는 수행을 할 때 명상주제가 향상하고 강해지고 충만하게 된다.







정신.물질을 떠나 중생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24. 감각접촉을 통해 네 가지 정신의 무더기들이 정신이라고 드러났을 때 그들의 대상인 네가지 근본물질들과 이 네가지 근본물질들에서 파생된 물질을 물질이라고 구분한다. 이와 같이 마치 칼로 상자를 열듯이, 쌍으로 된 종려의 구근을 둘로 쪼개듯이 18가지 요소들, 12가지 감각장소들, 5가지 무더기들이라는 이 삼계에 속하는 모든 법들을 정신과 물질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는 정신.물질뿐인 이 너머에 달리 중생이라든지 인간이라든지 신이라든지 혹은 범천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러 경과 대조함



25. 이와 같이 그들의 본성에 따라 정신.물질을 구분한 뒤 중생이나 인간 등 세간에 통용되는 명칭을 완전히 제거하고, 중생이라는 미혹을 넘어서고, 미혹이 없는 경지에 마음을 안주하기 위하여 여러 경을 통해서, ‘이것은 단순히 정신.물질일 뿐이다.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다’라고 이 뜻을 대조하여 구분한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부품들이 모였을 때 수레라는 단어가 있듯이 무더기(온)들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일상적인 말이 있다.”(S.i.135)







26. 다시 설하셨다. “도반이여, 목재와 덩굴과 진흙과 짚으로 공간을 에워쌀 때 집이라는 명칭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뼈와 힘줄과 살과 피부로 공간을 에워쌀 때 몸뚱이(물질)라는 명칭이 있습니다. (M.i.190)







27. 다시 설하셨다.



“오직 괴로움이 생기고



괴로움이 머물고 사라질 뿐



괴로움과 다른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괴로움과 다른 것이 가라앉는 것도 아니다.(S.i.135)







비유로 정신.물질을 설명함







28. 이와 같이 수백의 경들에서 오직 정신.물질을 설하셨을 뿐 중생을 설한 것도 아니고 인간을 설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굴대와 바퀴와 차체와 수레의 채 등의 부품들이 일정한 형태로 조립되었을 때 수레라는 인습적인 표현이 있지만 궁극적인 뜻에서 각각의 부품들을 면밀히 조사하면 수레라는 것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목재 등 집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일정한 형태로 공간을 에워싸고 있을 때 집이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지만 궁극적인 뜻에서 집은 없다. 손가락과 엄지손가락 등이 일정한 형태로 있을 때 주먹이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고, 류트의 파노가 현 등에서 류트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고, 코끼리와 말 등에서 군대라는, 성벽과 집과 성문등에서 도시라는, 줄기와 가지와 잎 등이 일정한 형태로 유지되어 있을 때 나무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잇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나등으로 취착하는 다섯가지 무더기(오취온)들이 있을 때 중생이나 인간이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을 뿐, 궁극적인 뜻에서 하나하나 세밀히 조사하면 ‘내가 있다’라든가 혹은 ‘나’라고 거머쥐는 토대가 되는 중생이란 것은 없다. 궁극적인 뜻으로 볼 때 오직 정신.물질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는 자의 봄(견)을 있는 그대로 봄(여실견)이라 한다.







29. 있는 그대로 봄을 버리고 중생이 있다고 거머쥐는 자는 이것이 멸절한다고 추정하거나 멸절하지 않는다고 추정한다. 멸절하지 않는다고 추정하면서 상견에 떨어지고, 멸절한다고 추정하면서 단견에 떨어진다. 왜 그런가? 우유에 부합하는 커드와 같이 중생에 부합하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생이 영원하다고 거머쥐면서 물러가버리고 단멸한다고 거머쥐면서 넘어서버린다.







30. 그래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 인간이 두 가지 견해에 압도당할 때 어떤 자는 물러가버리고 어떤 자는 넘어서버린다. 눈을 가진 자들만이 이것을 본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어떤자는 물러가버리는가? 비구들이여, ......인간은 존재를 좋아하고 존재를 즐기고 존재에 탐닉한다. 그들에게 존재의 소멸에 대해 설법하면 그 법에 들어가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안정하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어떤 자는 물러가버린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어떤 자는 넘어서버리는가? 어떤 자는 그런 존재를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넌더리내고 존재하지 않음을 기뻐한다. ‘여보게들, 이 자아는 이 몸이 무너진 뒤에는 끊어지고 멸하여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네, 이것이야말로 고요하고 이것이야말로 수승하고 이것이야말로 진실이라네.’라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어떤 자는 넘어서버린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눈을 가진 자들만이 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있어 존재를 존재 그대로 본다. 존재를 존재 그대로 보고 존재에 대해 역겨워하고, 탐욕을 없애고 소멸을 위하여 도닦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눈을 가진 자들만이 본다.







31. 그러므로 예를 들면 꼭두각시가 공하고, 생명이 없고, 관심이 없지만 나무와 줄의 결합으로 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호기심과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이 정신.물질도 공하고, 생명이 없고, 관심도 없지만 서로서로 결합하여 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호기심과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고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말씀하셨다.



“실로 정신과 물질이 여기 있을 뿐



중생과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공하고 인형처럼 만들어졌고



괴로움의 더미일 뿐이니 풀과 나무등걸처럼.“







정신.물질은 서로 의지한다.



32. 비단 꼭두각시의 비유뿐만 아니라 볏단 등의 다른 비유로도 이것을 알아야 한다. 볏단 두 개가 서로서로 의지해서 서있을 때 한 개는 다른 것의 버팀목이 되고, 한 개가 넘어질 때 다른 것도 넘어진다. 이와 같이 다섯 무더기를 가진 존재에서 정신,물질은 서로서로 의지해서 일어난다. 하나가 다른 것을 지탱해준다. 죽음으로 하나가 무너질 때 다른 것도 무너진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말씀하셨다.







“정신.물질은 쌍둥이



둘은 서로서로 의지한다.



하나가 무너지면 둘 다 무너지나니



서로 조건 지워졌기 때문이다.“







33. 막대기로 북을 두드리면 그 북을 의지하여 소리가 난다. 북과 소리는 서로 다르다. 북과 소리가 서로 섞이지 않는다. 북에 소리가 공하고 소리에 북이 공하다. 이와 같이 토대이고 문이고 대상이 되는 물질을 의지하여 정신이 일어날 때 정신.물질은 서로 다르다. 정신,물질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정신에 물질이 공하고 물질에 정신이 공하다. 그러나 북을 의지하여 소리가 있듯이 물질을 의지하여 정신이 일어난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말씀하셨다.







“감각접촉을 기본으로 한 다섯가지는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형상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형성된 것들은 원인을 조건하여 생긴다. 마치 북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것처럼







감각접촉을 기본으로 한 다섯 가지는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소리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감각접촉을 기본으로 한 다섯 가지는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감각접촉을 기본으로 한 다섯가지는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맛에서 생긴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감각접촉을 기본으로 한 다섯가지는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닿음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형성된 것들은 토대의 물질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법의 감각장소에서 온 것도 아니다.



원인을 조건하여 생긴다. 마치 북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것처럼.“







34. 더욱이 정신은 동력이 없으므로 자기의 동력으로는 일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말하지 않고, 행동거지를 짓지 않는다. 물질도 또한 동력이 없다. 자기의 동력으로는 일어나지 못한다. 먹기를 원하지 않고, 마시기를 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원하지 않고, 행동거지를 지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을 의지하여 물질이 일어나고, 물질을 의지하여 정신이 일어난다. 정신이 먹으려하고, 마시려하고, 말하려하고, 행동거지를 지으려할 때 물질이 먹고, 마시고, 말하고, 행동거지를 짓는다.







35. 이 뜻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음의 비유를 든다.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자와 절름발이가 어떤 지방으로 여행하기를 원했다.



장님이 절름발이에게 말했다. ‘내가 말하겠는데 나는 두 발로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다네. 그러나 평평한 길과 울퉁불퉁한 길을 볼 수 있는 눈이 내겐 없다네, ’절름발이는 장님에게 말했다. ‘내가 말하겠는데, 나는 눈으로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다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돌아올 발이 내겐 없다네.’



장님을 기뻐하며 절름발이를 어깨위에 태웠다. 절름발이는 장님의 어깨 위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 쪽으로 가게. 오른쪽 말고 왼쪽으로 가게.’라고 여기서 장님은 동력도 없고 무력하여 자기의 동력과 자기의 힘으로는 여행할 수가 없다. 절름발이도 동력도 없고 무력하여 자기의 동력과 자기의 힘으로는 여행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서로 의지하여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신은 동력이 없다. 자기의 동력으로 생기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 행위를 하면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물질도 동력이 없다. 자기의 동력으로 생기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 행위를 하면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그들은 서로서로 의지하여 생기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한다.







36. 그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자기의 힘으로 생길 수 없고



자기의 힘으로 머물 수도 없다.



다른 법들의 영향아래 존재하고



생기고 형성될 뿐 자기는 무력하다



다른 법들의 조건으로부터 생기고



다른 법들의 대상으로부터 일어난다.



이들은 다른 법들의 대상과 조건으로부터 생긴다.



배를 의지하여 사람들이 바다를 여행하듯이



물질을 의지하여 정신의 몸이 일어난다.



사람을 의지하여 배가 바다를 가듯이



정신을 의지하여 물질의 몸이 일어난다.



사람과 배가 서로 의지하여 바다를 가듯이



정신과 물질은 둘이 서로서로 의지한다.“







38.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신.물질을 구분하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인식을 극복한 뒤 미혹이 없는 경지에 확립되어 정신.물질을 있는 그대로 봄을 견청정(見淸淨)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신.물질의 구분과 상카라들의 한계를 정함과 동의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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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육경.육식에 대하여



육근.육경.육식의 성립과정은 감각기관인 육근이 감각대상인 육경을 접촉하면 인식 작용인 육식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인식이 발생하는 순서를 나열한 것이지만, 이러한 개념은 인식을 전제로 하여 육근.육경.육식을 단지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육식이라는 것은 육근이 육경을 만났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인식읩 발생원리를 파악하고자 설정한 개념일 뿐이다. 부처님께서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인식이 어디서부터 일어났는가를 역추론하고 살펴본 결과, 육근이 육경을 접촉하여 일어난 인식을 육식이라고 밝혀내신 것이다.



이렇게 파악하지 않으면 육근.육경.육식이라는 것들이 각각의 고유영역으로 존재한다는 삿된 견해에 빠지게 되어 이로 말미암아 숙명론.신에 의한 창조론. 우연발생론 등 허망한 논리의 사고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육근이라 하는가?



우리 몸이 대상을 만났을때 인식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역이 '다섯가지-오근:안.이.비.설.신근)이다. 그 다섯 가지를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이 '의근'이다. 이 여섯번째의 의근이 인식 발생의 바탕이 된다. 여기서 몸을 전제로 오근을 성립시키게 된 것은 오근의 기능들이 담당하는 고유 영역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다섯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첫번째는 눈, 두번째는 귀, 세번째는 코 , 네번째는 혀 , 다섯번째는 몸이다. 오근의 순서는 인간이 감각 대상을 접촉했을 때 가장 강하게 느낌을 받아들이는 순서로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오근에서 근이란 다섯가지의 고유영역에 뿌리가 있어서 근이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오근의 영역들이 대상을 접촉하면 인식할 수 있는 고유영역(뜻-의근)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전제로 근이라는 어법을 쓰게 된 것이다.







안근이라고 할 때는 안구만을 눈의 영역이라고 하지 않고, 안구를 연결하는 시신경 및 시신경이 최종적으로 뇌에 작용하는 시상하부까지를 총괄하여 안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귀.코.혀. 몸 역시도 눈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파악해야 한다.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124-125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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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경식의 가르침-무엇을 신견이라 하는가



부처님께서 까시의 맛치까상다에 있는 암바따까 숲에서 여러 제자들과 함께 계시던 어느 날, 찟따 장자가 상좌 비구들에게 문안하고 물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어서 '자아'가 있다고 말하고, 혹은 중생을 말하며, 혹은 수명을 말하고, 세상의 길흉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생각들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고 무엇이 원인입니까?"



이때 아시닷따 비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장자여, 그러한 소견들은 자기 육신이란 견해, 즉 신견을 근본으로 말하느니라."



"존자시여, 무엇을 신견이라 합니까?"







"장자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육신을 자아로 생각하거나, 자아가 육신을 거느리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육신이 자아 속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아가 육신 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마음(수.상.행.식)을 자아로 생각하거나 자아가 마음을 거느리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마음이 자아 속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아가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을 신견이라고 한다."



"존자시여, 어떻게 하면 신견을 없앨 수 있나이까?"



"지혜로운 제자는 육신은 자아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아가 육신을 거느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육신이 자아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아가 육신 속에 잇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자아가 육신 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아가 다르다고도 보지 않으며, 자아 안에 육신이 있다거나 육신 안에 자아가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자아와 다르다고도 보지 않으며, 자아안에 육신(색)이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마음(수.상.행.식)에서도 마찬가지니라. 이것을 신견을 없애는 길이라 하느니라."



<잡아함경 제21권 570. 이서달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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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경식의 가르침

눈이 빛을 통해서 사물의 형상과 색깔을 분별할 수 있을 때 눈의 영역을 안근이라 한다. 그러나 눈이 있고 빛이 있어도 눈으로 사물의 형상과 색깔을 볼 수 없게 되면 안근은 성립되지 않는다.







오근은 각각 작용하는 고유 영역을 가지고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있는 고유 영역이 있지만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맛을 볼 수도 없고, 냄새를 맡지도 못하고, 비벼서 감촉할 수도 없으며 의근을 통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인식할 수도 없다. 귀.코.혀. 몸도 이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고유 영역이 있으며, 고유 영역 이외에는 다른 영역을 인식할 수 없다.







이렇게 형성된 것을 오근이라 한다. 이 오근을 통해서 등록된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뜻이라는 여섯번째의 의근이 생겨난다. 그런데 오근과 의근은 서로서로 조건지어 일어나는 것일 뿐이지, 따로 떨어져서는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오근(육체)중에 어느 하나의 근이 상실된다고 하더라도 의근(뜻-정신)은 상실된 근의 느낌만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나머지 근의 느낌들은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오근의 기능이 온전히 갖추어졌더라도 인식 장소인 뇌에 장애가 생기면 의근(뜻-정신)



은 일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뜻이라는 의근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상실했기 때문에 오근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느낌들 역시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오근(안.이.비.설.신)과 의근(뜻)은 상호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다.



이러한 육근이 대상을 접촉하게 되는데 이 육근의 접촉 대상이 바로 여섯가지 경계(육경-색.성.향.미.촉.법)이다.







색(빛깔)은 눈이 대상과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요소이고,



성(소리)은 귀가 대상과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요소이고,



향(냄새)은 코가 대상과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요소이고,



미(맛)은 혀가 대상을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요소이며,



촉(감촉)은 몸의 피부가 대상과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요소이다.



법(모든 경계)은 뜻이 각각의 요소들과 접촉하여 생겨난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 종합된 인식 대상의 요소를 말한다.







육경의 요소 중 여섯 번째 법이라는 요소는 법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섯가지의 감각기관이 다섯가지 감각대상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 느낌들을 육근의 여섯번째 요소인 의근이 받아들이고, 의근이 받아들인 느낌들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이 바로 육경의 여섯번째인 법의 요소이다.



또한 타인의 경험을 전달받아 간접 경험하여 인식하게 되는 것들역시 법의 영역에 포함된다.







육근이 육경을 만났을 때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이 육식이다.



그런데 육근이 육경을 만났다 하더라도 반드시 인식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인식이 발생하는 조건은 육근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사람이 여섯가지 경계를 부딪쳤을 때 확연한 느낌으로 인식에 등록되어야만 비로소 인식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길을 걸어가다가 마주 오는 사람과 살짝 스쳐 지나갔다면 접촉은 일어났지만 확연한 느낌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접촉에 의한 인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의근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인식으로 등록이 되지는 못한다. 느낌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부딪쳤을 때라야만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육식은 육근이 육경을 만났을 때 각각의 감각 장소를 통해서 각각의 인식이 일어나게 된다.







눈이 색을 접촉하면 안식이 일어나고,



귀가 소리를 접촉하면 이식이 일어나고,



코가 냄새를 접촉하면 비식이 일어나고,



혀가 맛을 접촉하면 미식이 일어나고,



몸이 촉을 접촉하면 신식이 일어나고



뜻이 법을 접촉하면 의식이 일어난다.







이러한 것들을 육근.육경. 육식이라고 개념지어 표현한다.



육식이 온전하게 일어나려면 육근이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육식은 스스로 고유 영역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육근과 육경이 서로 접촉하지 않으면 육식은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육식이 다시 육근과 작용하게 되면 여섯가지의 경계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안계. 이계, 비계.설계. 신계.의계이다.



또한 육식이 육경과 작용하게 되면 색계.성계.향계. 미계. 촉계. 법계의 경계가 발생한다.







육식이 육근과 육경의 경계를 토대로 작용(삼사화합된 촉)하여 육식이 스스로에게 식을 조건으로 하여 인식을 일으키게 되면 그것이 안식계.이식계.비식계. 설식계. 신식계. 의식계의 경계로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육식은 육경과 육식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 의식의 경계를 통하여 육식 스스로에게 조건으로 하여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육근과 육경은 각각의 영역에서 인식의 경계를 발생시키지만 육식만은 스스로 고유 영역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식이 발생하게 되는 근본 바탕인 육근을 빌려 자리 잡고 경계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이렇게 발생시킨 결과 안식계.이식계.비식계. 설식계. 신식계. 의식계 라는 명칭을 부여받는다. 이것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모든 법의 근본 바탕인 근.경.식의 가르침이다.







<깨달음에도 공식이 있다 126-130쪽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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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봄이란 무엇인가?-청정도론 중에서

이와 같이 '나'등으로 취착하는 다섯가지 무더기들이 있을 때 중생이나 인간이라는 통상적인 표현이 있을 뿐, 궁극적인 뜻에서 하나하나 세밀히 조사하면 '내가 있다'라든가 혹은 '나'라고 거머쥐는 토대가 되는 중생이란 것은 없다. 궁극적인 뜻으로 볼 때 오직 정신.물질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는 자의 봄(見)을 있는 그대로 봄(如實見)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