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4.

금강경 대강좌-11- 無爲福勝分 -청담스님

無爲福勝分 第十一




須菩提(수보리)야 如恒河中所有沙數(여항하중소유사수)하야 如是沙等恒河(여시사등항하)하면 於意云何(어의운하)오 是諸恒河沙-寧爲多不(시제항하사-영위다부)아 須菩提言(수보리언)하되 甚多(심다)니이다 世尊(세존)하 但諸恒河(단제항하)도 尙多無水(상다무수)온 何況其沙(하황기사)리잇가 須菩提(수보리)야 我今實言(아금실언)으로 告汝(고여)하노니 若有善男子善女人(약유선남자선여인)이 以七寶(이칠보)로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하야 以用布施(이용보시)하면 得福(득복)이 多不(다부)아 須菩提-言 (수보리언)하되 甚多(심다)니이다 世尊(세존)하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하사되 若善男子善女人(약선남자선여인)이 於此經中(어차경중)에 乃至 受持四句偈等(내지수지사구게등)하야 爲他人設(위타인설)하면 而此福德(이차복덕)이 勝前福德(승전복덕)이니라



『수보리야,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 수와 같이 그렇게 많은 항하가 있다면 네 생각에 어떠하냐. 이 모든 항하에 있는 모래가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다만 저 모든 항하만 하더라도 수 없이 많사온데 하물며 그 모래이겠나이까.』

『수보리야, 내 이제 너에게 실다운 말로 이르노니,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저 모든 항하강의 모래처럼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채워서 다 보시했다면 그 복덕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 내지 사구게 등만 받아 지니고 남을 위해 일러 준다면 이 복덕이 앞에 말한 복덕보다 뛰어나리라.』





第十一 無爲福德分--무한대의 절대 복력



[科解]

제십일분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은 하는 생각 없이 무심(無心)으로 중생을 위해 짓는 복이 제일 거룩하고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는 것을 말씀하신 장(章)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보시하고 아무리 좋은 물질을 보시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우리 마음자리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고, 마음이 물질에 머무는 한 그것은 생사법(生死法)이고 중생심의 세계이므로 이것은 참다운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本性)은 이와 같은 물질적 현상을 다 초월했으며 이와 같은 물질은 곧 물질이 아니고 현상이 현상이 아닌 본체(本體)를 깨닫고 번뇌망상의 세계로부터 영원불멸의 진실세계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고통으로부터 보리열반(菩提涅槃)의 광명으로 중생을 인도하여 마침내 생사를 해탈하고 우주의 주인공(主人公)으로서 대자유 대자재(大自在)를 성취하게 하는 이 금강경의 진리를 남에게 가르쳐 주는 공덕은 어떠한 물질적인 보시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것임을 말씀하신 대문입니다.



原 文 須菩提 如恒河中 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水 何況其沙



解 義 부처님께서 이번에는 「항하의 모래가 많으냐 적으냐」하고 물으십니다. 항하(恒河)는 지금의 인도 갠지스강을 말하며 중국의 양자강(揚子江) . 황하(黃河), 미국의 미시시피강 이집트의 나일강 등과 함께 세계적인 큰 강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이수로 따지면 한 만 리나 되는 큰 강입니다.

얼마 전(1955)에 지금 종정 스님(河東山宗正), 통영(統營)에 계신 효봉 스님(曉峰) 그리고 몇 분 스님과 같이 인도에 갔을 적에 항하를 기차로 지나 본 일이 있습니다. 강물이 흐르는 옆에 모래밭이 깔려 있었고 모래밭의 폭만 십 리도 더 되는 것 같았는데 그 강 모래는 아무리 손아귀 힘이 센 사람이라도 모래를 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전부 빠져 버리고 땀네 붙은 모래만 남는다고 합니다. 쥘 수가 없을 정도로 보드랍고 먼지가루처럼 잘기 때문입니다. 강을 따라서 이런 고운모래가 한 만리 평야에 뻗쳐 가지고 밀가루 헤친 것보다 더 보드라와서 맨발로 다녀도 참 편리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모래의 수는 생각해 볼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 항하강의 모래가 얼마나 많으냐, 많지 않으냐.」 그것을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릴 때는 셋을 손가락으로 몇 번 곱아 보고서야 알지만 좀 커지고 나서는 척 보면 대번에 알 듯이 나한님들은 욕심이 없어져서 마음이 맑아졌고 도가 높아졌으므로 현상계를 한 번 보면 다 아시는데 수보리존자는 나한 중에서도 제일 가는 나한이므로 항하강의 그 모래 수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지만 한 생각에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 항하강에 가득한 모래 수와 같이 많은 항하강이 또 있다고 하면, 예컨대 이같은 항하사를 다른 지구 . 금성(金星) . 화성(火星) . 목성(木星)에 까지 확대하여 「항하사 모래 수많큼 많은 항하가 있다고 하면 그 모든 항하의 모래 수는 얼마나 되겠느냐」하고 부처님께서 물으십니다. 수보리 존자께서 여쭈었습니다. 「참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한 항하의 모래수도 그 수가 한량 없는데 그렇게 많은 항하의 모래수는 이루 다 말할 수나 있겠사옵니까.」 만일 전 인류가 다 모여서 한 항하의 모래 수를 손으로 헤아린 다고 하면 백년을 세더라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래 수만 한 항하강의 모래는 무한수(無限數)일 것이므로 많다고 하신 것입니다.





原 文 須菩提 我今實言 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 滿爾所恒河沙數 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得福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解 義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보리야, 내가 이제 참 진정한 말로 네게 이르노니 만일 어떤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금 . 은 . 호박 . 진주 등의 七보를 앞에서 말한 항하강 모래수처럼 많은 항사 사장의 모래 수 만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히 채워서 보시한다 하면 그 복이 많겠느냐. 안 많겠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작은일이지만 남이 목마를 때 찬물 한 그릇만 떠 주어도 그 공덕으로 세세생생에 큰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런 굉장한 칠보를 보시를 보시로 다 주었으니 그 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보리 존자께서 『참 굉장합니다.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사뢰었습니다.





原 文 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 四句偈等 爲他人設 而此福德 勝前福德



解 義 부처님께서 다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만일 어떤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이 금강경 가운데 사구게(사구게)만 받아 가졌다가 남을 위해 해설해 주면, 예컨대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등의 법문(法門)을 제대로 일러주면 그 복덕은 앞에서 항하의 모래수처럼 많은 삼천대천 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보시한 것보다도 그 공덕이 훨씬 더 크니라』고 하셨습니다. 가령 이것의 여러 억천만배 이상 무한대로 벌어져 있는 우주라 하더라도 내 몸뚱이의 털구멍 속에 그것을 전부 집어 넣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방법이 사구게(四句偈)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성을 깨달아서「응무소주 이생기심」으로 산을 대할 때나 물을 대할 때나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을 대할 때 크다 작다 분별이 없으며 산이나 물이나 분별이 없이 대합니다. 육도만행(六道萬行)을 행해도 무심으로 하고 모든 것을 다 하는 것 없이 하는데, 결국은 부처님께서 자꾸 금강경 수지독송하라고 하시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남에게 이 정법(正法)을 해설해 주는 것이 참말로 그 사람을 영원히 위하는 것이고 그게 참말로 자기의 마지막 복과 지혜를 성취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물질도 보시하고 몸뚱이도 보시한다고 해도 이 경전에 대한 것을 일러 준 것만 못하다고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