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4.

상당법어-동화사 금당선원-효봉스님-1959년(己亥年) 5월 15일

1959년(己亥年) 5월 15일
상당법어-동화사 금당선원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사월 보름 결제시(結制時)에 약속하기를, 고향(故鄕)을 떠난 지 오래 됐으니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하였는데 고향길은 여기서 구천 리(九千里)다.
하루 백 리(百里)씩 걷기로 하고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여 이미 한 달이 지났으니 적어도 삼천 리(三千里)를 왔어야 한다. 각자(各自) 점검하라.
쇳덩이를 다루어 금(金)을 만들기는 오히려 쉽지만 범부(凡夫)가 성인(聖人)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 일이 천상천하(天上天下)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산승(山僧)이 투신(投身) 조역(祖域)하여 이미 삼십여 년이 지났다. 조주고불(趙州古佛)은 보임(保任)을 삼십 년(三十年)하고, 향엄화상(香嚴和尙)은 타성일편(打成一片) 사십 년(四十年)에 이 일을 성취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 선풍(禪風)이 들어온 지 천여 년에 혜(慧)에만 편중하고 정(定)을 소홀이 하였다. 근래(近來)에 선지식(善知識)이 종종 출현하였으나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앞길이 망망하니 그 까닭은 정혜(定慧)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고서 어떻게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을 것인가.
고인(古人)이 말씀하신 건혜(乾慧)로는 생사(生死)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번 여름철에 만약 견성(見性)을 못한다면 공안(公案)에 득력(得力)이라도 해야 한다.
어떤 것이 득력처(得力處)인고? 첫째, 혼침(昏沈)과 산란(散亂) 두 가지 마(魔)에 침해를 받지 않을 때. 둘째, 일체의 시비(是非)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셋째, 본참공안(本參公案)이 끊임이 없을 때.
그러므로 오늘 득력(得力)하지 못한 것을 걱정할지언정 견성(見性)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 말라.
옛날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禪師)가 제자 마조(馬祖)의 좌선(坐禪)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앉아서 무엇하는가?' '부처되려고 좌선하지요.' 그러자 회양선사가 하루는 기왓장을 가져와 돌에 대고 갈았다. 마조(馬祖)가 좌선하다가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 문을 열어 보니 거기 스승이 있었다. '무엇하려고 기와를 가십니까?' 회양선사가 답하기를 '기와를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네'라고 하였다. 이에 마조가 '금시초문(今時初聞)입니다' 하니 회양선사가 '좌선으로 부처된다는 소리도 금시초문이네'하였다.
이 말에 마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좌선 말고 따로 길이 있습니까?'
'수레가 가지 않을 때는 소를 몰아야겠는가, 수레를 몰아야 겠는가.' 이 물음 끝에 마조는 크게 깨달았다.
그러면 마조(馬祖)스님의 득처(得處)가 소에 있느냐, 수레에 있느냐. 오늘 나는 타우(打牛)도 옳지 않고 타거(打車)도 옳지 않다 하겠으니, 어떻게 해야 옳겠는가. 대중은 자세히 살피라. 설사 소를 때려 그 진수를 얻었다 할지라도 오히려 도둑이 지나간 뒤 활을 당김이니라. 대중은 곧 화살을 빼어 오너라. 일러라, 회양의 뒤통수에서 화살을 뽑았느냐. 마조의 뒤통수에서 화살을 뽑았느냐?
 
한참 있다가 게송으로 읊으시기를,
 
한 화살로 두 마리 붕새를 맞힌들 뭐 그리 대단할까
칼의 서슬이 빛나 삼천대천 세계에 두루함이로다
오월 찬서리에 새의 자취 끊어졌는데
청청히 푸른 대가 사계절 봄이라네.
一箭雙鵬未是貴라 劒光閃삭변三千이로다
五月嚴霜飛鳥絶한데 의의綠竹四時春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울리고 자리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