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5.

상당법어-동화사 금당선원-효봉스님-1959년(己亥年) 11월 1일

1959년(己亥年) 11월 1일

상당법어-동화사 금당선원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청법게(請法偈)에 '차경심심의(此經甚深意)를 대중심갈앙(大衆心渴仰)하오니 유원대법왕(唯願大法王)은 광위중생설(廣爲衆生說)하소서'하고 청했다. 차경(此經)은 무슨 경인고?



대중이 말이 없자 이르시기를,

이 심히 깊고 미묘한 경은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서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큰 광명[大光明]을 발하니, 여기 모인 대중은 그 도리를 알겠는가?


건곤(乾坤)을 차 버리고 일월(日月)을 만질 수 있어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사족(蛇足)을 말하리라. 우리 대중(大衆)이 반야선(般若船)을 타고 생사대해(生死大海)를 건너는데 때로는 순풍(順風)을 만나고 때로는 역경(逆境)도 지나게 되리니, 순풍이거나 역경이거나 분별하지 말고 다만 앞으로 나아가라.

게송을 읊으시되,

태호 삼만 육천의 물결


그 파도 속의 달을 누구에게 말하랴


하루 아침 강물을 죄다 마셔 버리면


용마(龍馬)를 거꾸로 타고 육지를 달리리.


太湖三萬六千頃에 月在波心說向誰오


一朝吸盡河海水하면 龍馬倒騎漢陽馳하리라

 
요즘 들으니 알았다는 수좌(首座)가 있다고 한다. 이리 나오너라!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심천간(深淺間)에 알았다는 것이 귀한 일이다. 법(法)에는 체면도 있을 수 없다.

이때 대중 가운데서 한 수좌(首座)가 나와 삼배(三拜)를 하고 앉았다. 스님이 물었다.

'일어서라. 알았다니 무엇을 알았느냐?'


'아는 것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각공(覺空)입니다.'


'각공(覺空)이라니 각(覺)이 공(空)했느냐, 공(空)을 각(覺)했느냐?'



그 수좌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스님은 말씀하였다.



'알고 모르는 것은 그만두고 속히 일구(一句)를 일러라.'



그가 주저하자 스님은 주장자를 한 번 울리고 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제부터 더욱 분발하여 밤잠을 줄이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구(一句)를 가져와 일러라.


대중이 작년에 비해 발심(發心)한 사람이 많고 착실히 공부하고 있다. 수면(睡眠)을 줄이고 공부 시간을 늘리라. 노력하는 것만큼 소득이 있다. 어려운 행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아 내는 것이 납자(衲子)의 본분(本分)이다. 참고 또 참으면 조용히 성취(成就)가 돌아오는 법이다. 팔공산(八公山) 선불장(選佛場)에는 남녀(男女) 대중이 여간 많지 않다. 남녀간에 한철을 나면 난 소득이 있어야지 소득이 없으면 백철을 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득력(得力)하면 견성(見性) 못할 것 없고, 견성(見性)하면 성불(成佛) 못할 걱정 없다. 혼침과 산란에 구애되지 않을 때, 모든 선악(善惡)․시비(是非)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공부길에 들어선 것이다. 공부가 들락날락할 때에는 득력(得力)이 없다. 득력하고 못한 것은 각자가 시험하라. 자기 살림살이는 자기가 달아보면 알 수 있다.


요즘 선풍(禪風)이 침체되고 흐려져 영리한 사람들이 어떤 공안(公案)에 조금씩 소식을 얻으면 견성(見性)하였다고 자처하고 남들도 덩달아 그렇게 말한다. 여기에 만족하면 스스로 속는 것이니 더욱 더 공(功)을 닦아야 한다. 생사(生死)에 자유(自由) 없이 무슨 큰 소리냐. 섣달 그믐을 당해 견성(見性)을 못했으면 앞길이 망망해지리라.


혼침과 산란이 없어야 정(定)이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정(定)이 된다. 누차 말한 바이지만, 정력(定力)이 없는 혜(慧)는 건혜(乾慧)다.


건혜로는 생사(生死)를 면할 수 없다. 정혜(定慧)를 쌍수(雙修)하고 안팎이 명철(明徹)해야 생사(生死)에서 벗어날 수 있다.


끝으로 한 마디 할 것은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는데, 조주(趙州)스님은 어째서 개에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고 했는가. 조주 스님의 이 일구(一句) 법문(法門)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능히 알 바가 아니다. 이 일구(一句)는 언하(言下)에 알아차려야 한다.



주장자를 세 번 울리고 자리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