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4.

상당법어-진주 연화사-효봉스님-1954년(甲午年)

1954년(甲午年)
상당법어-진주 연화사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입을 열면 불조(佛祖)의 뜻을 어기고 입을 열지 않으면 대중(大衆)의 뜻을 어긴다. 어떻게 하면 불조와 대중의 뜻을 어기지 않겠는가?


한참 있다가 이르시기를,


불조(佛祖)는 내 원수요 대중은 내 친구로다. 일찍 듣건대 진주(晉州)의 불자들은 그 머리에 모양 없는 뿔이 났는데, 그 뿔이 부딪치는 곳에는 아무도 대적할 이가 없다 하니, 그 경지를 한 번 말해 보라.


대중이 말이 없자 이르시기를,


아 유쾌하다. 말이 없는 그 가운데 시방(十方)의 허공이 다 무너졌도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중생 세계를 두루 보니, 나고 늙고 앓고 죽음을 누가 면할고. 만일 이 네 가지 고통[四苦]을 면하려거든 생사(生死)가 없는 그곳을 모두 깨쳐라. 생사가 없는 곳이 곧 열반(涅槃)이요, 열반을 구하는 것이 바로 생사다. 그러나 생사와 열반은 허공 꽃[空華]과 같아서 있는 듯 하지만 진실이 아니니, 생사를 싫어하지도 말고 또 열반을 구하지도 말라.


수행문(修行門)에는 계율(戒律)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의 삼학(三學)이 있다. 계율은 탐욕을 다스리고, 선정은 분노를 다스리며, 지혜는 우치(愚癡)를 다스린다. 이 탐욕과 분노와 우치의 삼독(三毒)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범부(凡夫)의 삼독이요, 둘째는 이승(二乘)의 삼독이며, 셋째는 보살(菩薩)의 삼독이요, 넷째는 부처[佛]의 삼독이다.


범부의 삼독이란, 오욕(五欲)을 비롯하여 일체의 구함을 탐욕이라 하고 매를 맞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기타의 모든 역경(逆境)에 대해 마음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분노라 하며, 바른 길을 등지고 삿된 길에 돌아가 바른 법을 믿지 않음을 우치라고 한다.


이승(二乘)의 삼독이란, 즐겨 열반을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생사(生死)를 싫어하는 것을 분노라 하며, 생사나 열반이 모두 본래 공(空)인 것을 알지 못함을 우치라 한다.


보살의 삼독이란, 불법(佛法)을 두루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이승(二乘)을 천하게 여기는 것을 분노라 하며, 부처 성품[佛性]을 분명히 모르는 것을 우치라 한다.


부처의 삼독이란, 중생을 모두 구제하려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천마(天魔)와 외도(外道)를 방어하려는 것을 분노라 하며, 사십오 년 동안 횡설수설한 것을 우치라 한다.


게송을 읊으시되,


탐욕(貪慾)이 원래 바로 그 도(道)이며
분노와 우치도 또한 그러하네
이와 같이 삼독(三毒) 가운데에는
모든 불법(佛法)이 갖추어져 있네.


나는 이제 대중에게 묻노니 이것이 바로 대중의 경계인가, 또는 저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의 경계인가? 대중의 경계라 해도 삼십방[三十棒]을 내릴 것이요, 또 문수와 보현의 경계라 해도 삼십방[三十棒]을 내릴 것이니, 어떻게 하면 그 삼십방[三十棒]을 면할 수 있을까?


대중이 말이 없자 말씀하시기를,


남강(南江)의 어부(漁夫)가 그 삼십방을 맞고 달아났도다.


게송을 읊으시되,


그대가 고향으로부터 오니
아마 고향의 일을 알리라
떠나는 날 그 비단창 앞에
매화꽃이 피었던가 안 피었던가?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