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甲午年) 1월 15일
동안거 해제법어-통영 용화사 토굴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8출가 대중(出家大衆)과 재가 대중(在家大衆)이 다 같은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제자로서, 작년 시월 십오일에 여기서 삼보(三寶)의 증명으로 겨울 안거를 결제(結制)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던가. 그것은 다만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늘 해제(解制)하는 날을 맞아 무슨 소득이 있는가? 어떤 소득이 있다면 대중은 각자 말해 보라.
대중이 말이 없자 이르시기를,
아, 결제할 때는 내가 대중을 몰랐더니 해제할 때는 대중이 나를 모르는구나!
게송을 읊으시되,
내가 지금 중생계(衆生界)를 두루 살펴보니
나고 늙고 앓고 죽음[生老病死] 누가 면할고
만일 그 네 가지 고통 면하려거든
본래 생사(生死) 없는 곳을 깨달아야 하네.
또 말씀하시기를,
생사(生死)가 끊어진 곳 바로 보리(菩提)이거니
그림자와 메아리 따르다가 바름을 잃지 말라
알고 깨달아 계합하고 쓰는 것[知體契用] 참된 내 일이네
다만 이치를 깨달은 것 구경이 아니라오.
슬프다. 예사로 공부하는 말세 중생들이 구두선(口頭禪)만을 배우고 실제의 이해는 전혀 없어 몸을 움직이면 유(有)를 행하면서 입을 열면 공(空)을 말한다. 스스로 업력(業力)에 이끌림을 알지 못하고 다시 남에게는 인과(因果)가 없다고 가르치면서, 도둑질과 음행이 보리(菩提)에 장애되지 않고 술을 마시고 고기 먹음이 반야(般若)에 방해되지 않는다 하니, 그런 무리들은 살아서는 부처님의 계율을 어기고 죽어서는 아비지옥에 빠질 것이다.
거기서 지옥의 업이 소멸된 뒤에는 다시 축생이나 아귀 세계에 떨어져 백천만 겁에 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대중은 한 찰나에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이치(理致)에 있어서는 일을 생각하고 일에 있어서는 이치를 밝혀, 다같이 큰 일을 마친 사람[了事人]이 되어 불조(佛祖)의 남기신 자취를 이어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게송을 읊으시되,
온종일 주인(主人)을 찾았건만
온 곳 간 곳이 모두 다 없네
다만 이 산중(山中)에 있으련마는
구름이 깊어 그 곳을 알 수 없네.
만일 그 주인공(主人公)을 찾고자 하거든
한 생각에 번뇌 구름 없애버리라
번뇌 구름 사라져 그 주인 보나니
그는 딴 사람 아닌 내 자신인 것을.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