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甲午年) 7월 24일
상당법어-비구승(比丘僧) 대회차 상경중 선학원에서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입을 열면 불조(佛祖)의 뜻에 어긋나고 입을 열지 않으면 대중의 뜻에 어긋나니 어떻게 해야 불조(佛祖)의 뜻과 대중의 뜻에 어긋나지 않을고?
인곡화상(麟谷和尙)이 '시자(侍者)야, 차를 올리고 예배드려라'하자 스님은,
그런데 왜 나를 자리에서 내려오라 하지 않는가? 오늘 법문(法門)은 이로써 마치겠지만, 대중 가운데에는 내 법문에 만족하는 이도 있겠거니와 또 만족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몇 마디 더 하리라.
오늘 나는 묘고산(妙高山)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안에는 사상의 산[四相山]이 둘러 있고 밖에는 생사의 바다[生死海]가 둘러 있었으니, 어떻게 하면 그 사상의 산을 넘고 생사의 바다를 건널 수 있겠는가?
대중이 말이 없자 곧 게송을 읊으시기를,
누구나 사상(四相)의 산을 넘으려거든
토끼뿔 지팡이를 짚어야 하고
누구나 생사(生死)의 바다를 건너려거든
반드시 밑 빠진 배[無底船]를 타야 하리라.
만일 이 일을 이야기하려면 삼세 모든 부처님[三世諸佛]도 이 문으로 드나들었고, 역대의 조사[歷代祖師]도 이 문으로 드나들었으며, 천하의 선지식[天下善知識]도 이 문으로 드나들었다. 여기 모인 대중[時會大衆]은 어떤 문으로 드나들려는가?
대중이 말이 없자 한참 있다가 말씀하시기를,
이 문(門)이란 계율․선정․지혜의 삼학(三學)을 가리킴이다. 이 삼학(三學)은 마치 집을 짓은 것과 같으니 계율은 집터와 같고, 선정은 재목과 같으며, 지혜는 집 짓는 기술과 같다. 아무리 기술이 있더라도 재목이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고, 또 재목이 있더라도 터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삼학(三學)을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 삼학을 함께 닦아 쉬지 않으면 마침내 정각(正覺)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 형제들이 이미 발심하여 공문(空門)에 들어왔다면, 세상 인연을 아주 끊고 불조(佛祖)의 가르침에 의해 이 삼학을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은 각각 저울을 가지고 날마다 닦는 공부의 그 무게를 검토할 때에 반야의 힘[般若力]과 무명의 힘[無明力]을 자세히 저울질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을 읊으시되,
모든 선지식(善知識)이 여기 함께 모였으니
모두들 그 머리 위에 무상화(無相華) 피었구나
이 꽃이 떨어지는 곳에 그 열매 맺으리니
미친 바람이 그 꽃을 일찍 지게 하지 말라.
누가 있어 이 사자좌(獅子座)를 내게 맡기어
부끄럽다 오늘 나에게 여우 울음 울게 하는가
그러나 내게는 변신술(變身術)이 있어
또 한 생[一生]은 여우가 사자(獅子)로 변하였네.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