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3.

문성니재일(文成尼齋日) 법어-행인사 가야총림-효봉스님-1950년(庚寅年) 여름

1950년(庚寅年) 여름


문성니재일(文成尼齋日) 법어-행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연기와 구름이 흩어지니 외로운 달이 스스로 밝고, 모래와 자갈이 다 없어지니 순금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 일도 그와 같아서 미친 마음[狂心]이 쉬면 그곳이 바로 보리(菩提)이니라. 이 깨끗하고 미묘하고 밝은 성품[性淨妙用]은 남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며 밖에서 구할 것도 아니니 다만 자기가 안으로 살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 세존께서 처음으로 이 일[此事]을 깨치고 푸른 연꽃 같은 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시고는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딱하고 딱하도다. 내가 일체 중생을 관찰하니 모두 여래(如來)의 지혜(智慧)와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건만 망상(妄想)과 집착(執着)으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그러므로 망상만 떠나면 무사지(無師智)와 자연지(自然智)와 무애지(無碍智)가 모두 나타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부처님은 진실을 말하는 분이신데 어찌 우리를 속이겠는가.

만일 이 이치를 믿거든 당장 서슴지 말고 처단하여 아주 쉬어버리면 곧 온갖 풀잎 끝[百草頭]에 조사의 뜻[祖師意]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게 되면 벗어버려야 할 생사(生死)도 없고 구해야 할 열반(涅槃)도 없다. 왜냐하면 거기는 생사가 없으므로 그 본체는 치우침과 원만함[偏圓]이 끊기었고, 생각은 비록 옮겨 흐르나 본래의 묘한 광명은 홀로 빛나기 때문이다. 만일 그 뜻을 잃으면 여러 겁의 수행도 헛된 노력일 것이요, 그 미묘한 문[妙門]에 들어가면 단박에 부처를 이룰 것이다.



주장자를 세워 선상을 한 번 울리고 이르시되,



문성(文成) 영가여, 위에서 말한 법문(法門)을 알겠는가? 알 수 있다면 천당(天堂)과 불찰(佛刹)을 마음대로 소요할 수 있겠지만 혹 그렇지 못하거든 이 산승(山僧)의 말후(末後)의 게송을 들으라.



게송을 읊으시되,



아득하여라, 저 공겁(空劫) 밖에

따로이 한 천지(天地) 있나니

그 집안 사람들은 늙지도 않고

그 산의 나무들은 뿌리가 없네.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