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庚寅年) 4월 15일
하안거 결제법어-해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우리 형제가 동서남북(東西南北)에서 모두 여기 모여 왔으니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인고, 부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내가 곧 부처인데 무엇 때문에 부처가 부처를 구하려는가. 그것은 바로 물로써 물을 씻고 불로써 불을 끄려는 것과 같거늘, 아무리 구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여러 대중은 다행히 본래 다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거늘 무엇 때문에 고통과 죽음을 스스로 만드는가. 그것은 들것을 찾다가 옥을 떨어뜨려 잃는 격이니, 만일 그렇게 마음을 쓰면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각자의 보물 창고[寶藏]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으니, 그 끝없는 수용(受用)을 다른 데서 구하지 말라.
한 법[一法]도 취할 것이 없고 한 법도 버릴 것이 없으며, 한 법의 생멸(生滅)하는 모양도 볼 수 없고 한 법의 오고 가는 모양도 볼 수 없는 것이니, 지금부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쉬어버리면, 온 허공계와 법계가 털끝만한 것도 자기의 재량(財糧)이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만일 이런 경지에 이르면 천불(千佛)이 세상에 나오더라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니, 생각지도 말고 찾지도 말라. 내 마음은 본래 청정[自心本來淸淨]한 것이니라.
게송을 읊으시되,
만사(萬事)를 모두 인연(因緣)에 맡겨 두고
옳고 그름에 아예 상관하지 말라
허망한 생각이 갑자기 일어나거든
한 칼로 두 동강을 내어 버려라.
빛깔을 보거나 소리를 듣거나
본래 공안(公案)에 헛갈리지 말지니
만일 이와같이 수행(修行)하면
그는 세상 뛰어난 대장부(大丈夫)이리.
그런데 그 속의 사람[箇中人]은 고요하고 한적한 곳을 가리지 않는다. 내 마음이 쉬지 않으면 고요한 곳이 곧 시끄러운 곳이 되고, 내 마음이 쉬기만 하면 시끄러운 곳도 고요한 곳이 된다. 그러므로 다만 내 마음이 쉬지 않는 것을 걱정할 것이요, 경계를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경계는 마음이 아니요 마음은 경계가 아니니, 마음과 경계가 서로 상관하지 않으면 걸림 없는 한 생각이 그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 형제들이 삼 년이나 몇십 년 동안에 바른 눈을 밝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소견에 집착하기 때문이니, 그럴 때는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공안(公案)을 결택(決擇)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에 그런 선지식이 없을 때에는 고인(古人)의 어록(語錄)으로 스승을 삼아야 하느니라. 또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일은 묵언(黙言)하는 일이니,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이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 사람의 말에,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가는 곳마다 걸린다' 하였으니 이 어찌 믿지 않을 것인가.
게송을 읊으시되,
그대가 고향에서 왔으니
아마 고향의 일을 알 것이다
떠나는 날 그 비단창 앞에
매화꽃이 피었던가?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울리고 이르시기를,
맑은 밤 삼경(三更)에 별들이 반짝이고
강성(江城) 오월(五月)에 매화꽃 떨어지네.
법상에서 내려 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