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庚寅年) 5월 15일
상당법어-해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우리 집 형제들은 바로 이 때를 당해 안심처(安心處)를 얻어야 한다. 안심처를 얻으면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 있더라도 걱정할 것이 없지만, 안심처를 얻지 못하면 때를 따라 마음이 흔들려 언제고 안락(安樂)하지 못할 것이다.
주장자를 세워 선상을 한 번 울리고 말씀하시기를,
여기 모인 대중 가운데 혹 좌선(坐禪)하는 이가 있는가? 좌선하는 이가 있다면 한 방망이로 때려 내쫓아 이 법석(法席)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라. 이 말을 듣고 눈을 뜬 납자(衲子)는 부디 높은 곳에 눈을 두어야 할 것이니, 그 중에 혹 알아차리지 못할 이가 있을까 하여 이제 간단히 설명하리라.
법성(法性)은 본래 움직이지 않고 항상 고요하며 탕탕(蕩蕩)하여 그 끝이 없는데, 그 마음을 취하고 버리는 사이에 두기 때문에 그 경계의 역순(逆順)을 따라 흔들린다. 그러므로 만일 그런 무리들이 생각을 거두고 삼매(三昧)에 들어 좌선하며 경계를 걷우고 마음을 편안히 해 깨치려 한다면, 그는 마치 만들어진 목인(木人)이 수도(修道)하는 것과 같거늘 어떻게 피안(彼岸)에 이를 것인가. 그러나 무지한 사람[無智人] 앞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말라.
그대들 몸을 때려 천 조각 만 조각을 내리라.
또 말씀하시기를,
우습고 우스워라. 일체 중생이 제각기 한 가지씩 다른 견해(見解)를 고집하여 다만 지짐판에 가서 전[餠] 얻어 먹을 줄만 알지 근본으로 돌아가 밀가루 볼 줄은 모르는구나. 밀가루는 정사(正邪)의 근본이므로 사람의 생각을 따라 갖가지를 만드는 것이니, 필요함을 따라 이것저것을 만들 것이요
한 가지만 치우쳐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말라. 집착이 없으면 그것은 해탈(解脫)이요 구함이 있으면 그것은 결박[繫縛]이다.
게송을 읊으시되,
자성(自性)이 본래 공(空)임을 깨달으면
마치 열병(熱病)앓는 사람 땀낸 것 같네
마음 속에 너와 나의 분별(分別) 있으면
마주 대해서도 부처 면목(面目) 모르리.
본분납자(本分衲子)의 경지에 이르면 천지가 넓다지만 그것은 내 마음의 도량(道場)에 있는 것이요, 해와 달이 밝다 해도 내 눈동자에 미치지 못하며, 큰 바다가 아무리 평온하더라도 내 몸과 마음의 편안함만 못하고, 태산이 높고 견고하다 할지라도 내가 새운 서원(誓願)만 못하며, 송죽(松竹)아 곧다 할지라도 내 등뼈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취모의 지혜칼[吹毛慧劍]이 내 손에 있으니 병과(兵戈)의 난리가 두려울게 없고, 큰 의왕[大醫王]의 신령스런 약[靈藥]을 항상 먹으니 질병의 근심이 영원히 없으며, 선열의 음식[禪悅食]이 항상 바리때에 가득하니 주릴 염려가 없고, 복밭의 옷[福田衣]을 겹겹이 입었으니 추의의 고통이 또한 없으며, 청량산(淸凉散)을 날마다 먹으니 삼복 더위의 고통이 조금도 없다.
세간을 뛰어난 장부의 생활은 마땅히 이래야 하는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송장을 끌고 도식(盜食)하는 자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