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3.

하안거 결제법어-통영 미륵산 용화사 토굴-효봉스님-1953년(癸巳年) 4월 15일

1953년(癸巳年) 4월 15일
하안거 결제법어-통영 미륵산 용화사 토굴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만약 이 일을 말한다면 남녀(男女)와 노소(老少)도 없고 출가(出家)와 재가(在家)도 없으며 구참(舊參)과 신참(新參)도 없고, 다만 그 당자[當人]의 결정적인 신심이 확고부동한 데에 있을 뿐이다. 대개 출가한 사람[出家人]이라도 깨달음을 등지고 티끌과 합하면 마군(魔軍)이 불당(佛堂)에 있는 것이요, 재가의 사람[在家人]이라도 깨달음과 합하고 티끌을 등지면 부처가 속가(俗家)에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많은 날을 허비하지 않고 천리 만리를 빨리 가며, 어떤 이는 일생을 행각(行脚)하여도 두 걸음 세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니, 사람의 근기(根機)는 이렇게 차별이 있는 것이다.
소위 참선한다는 사람[參禪人]으로서 방석에 앉아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의 두 마굴(魔窟) 속에 떨어져 있으면 그는 벌써 널쪽을 짊어진 놈이라, 어찌 활인(活人)과 함께 살 수 있겠는가.
오늘 대중들은 비록 호랑이를 그리다가 이루지 못해 개만 못할지라도 호랑이를 그려야지 개는 그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방편(方便)에도 있지 않고 점차(漸次)에도 있지 않은 것이니, 번갯불 속에 바늘귀를 꿰고 벼랑 끝에서 손을 놓는 뛰어난 근기라야 한다.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