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2.

동안거 해제법어-해인사 가야총림-효봉스님-1950년(庚寅年) 1월 15일

1950년(庚寅年) 1월 15일
동안거 해제법어-해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오늘은 마침 좋은 때다. 우수(雨水)는 이미 지나고 경칩(驚蟄)이 가까왔으니 낙동강(洛東江) 얼음도 풀렸겠구나. 그러므로 만 길 깊은 못에서 신룡(神龍)을 낚아 올리리라.
 
법상을 한 번 울리고는,
 
이 법구(法句)는 삼세(三世) 부처님들도 다 말할 수 없고 역대조사(歷代祖師)도 다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거의 불조(佛祖)들은 모두 입이 없기 때문이니라.
 
한참 있다가 이르시되,
 
나는 한 찰나에 이 법구(法句)를 다 말하였다. 육근(六根)의 구애를 받지 않는 이는 다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였는가?
 
대중이 말이 없자 이르시기를,
 
왜 말하지 않는가. 입이 없는가? 무릇 납자(衲子)의 안목은 대용(大用) 앞에 사소한 절차는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 비록 말하기 전에 모두 알았다 하더라도 눈에 닿으면 생각을 일으키고, 말끝에 모두 알아차리더라도 경계에 부딪치면 곧 걸린다. 그런데 지금 대중을 보건데 예전에 배운 알음알이를 따라 미혹하여 본래면목을 아득히 모르고 있구나.
그 일이 만일 말에 있다면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가 모두 말인데 무엇 때문에 새삼스레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말하겠는가.
그렇다면 나쁜 지식과 견해를 모두 없애버리고 앞뒤가 끊어진 곳에 한 생각이 곧 상응(相應) 해야 하는 것이니, 그래야만 비로소 사자아(獅子兒)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흑산(黑山) 밑의 귀굴(鬼窟) 속에 앉아 화두(話頭)를 들어 깨달았다고 자칭한다면, 그런 선객(禪客)들은 효봉(曉峰)의 제자[門下人]가 아니요 바로 송장을 지키는 귀자(鬼子)일 뿐이니라.
 
또 이르시기를,
 
지옥(地獄)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가사를 입고도 큰 일[大事]을 밝히지 못한 채 사람의 몸을 잃어버리는 그것이 고통 중의 고통이다. 내가 본래 이 곳에 온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며 의식을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이 가운데 사람을 얻기 위해서이니 금년 안에 하나나 반이라도 얻는다면 여기 모인 대중과 이곳에서 목숨을 마치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을 버리고 푸른 구름과 함께 떠나가리라.
 
게송을 읊으시되,
 
토끼뿔 지팡이[兎角丈]를 둘러 메고
거북털 산[龜毛山]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어떤 노인[一老人]을 만났더니
그는 성도 없거니와 이름조차 없더라.
 
그러면 대중에게 묻노니 그 노인의 성명(姓名)은 무엇인고? 속히 일러라.
이르지 못하면 그대들 허리를 꺽어 두 동강을 내리라.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자리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