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己丑年) 8월 1일
상당법어-해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영가(永嘉)스님의 말에 '마음은 감관이요 법은 경계이다[心是根 法是塵].
그러나 그것은 다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은 것이니, 마음의 때를 모두 지워버리면 비로소 광명(光明)이 나타나고, 마음과 법을 모두 잊어버리면 그 성품이 곧 진실(眞實)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은 망상(妄想)을 쉬고 마음을 닦는 방편(方便)으로 가장 친절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 나그네가 부질없이 그런 말로 후학(後學)들로 하여금 깨진 기왓장 속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다.
이 산승(山僧)은 그렇지 않고 이렇게 말하리라. 즉 조계(曹溪)의 거울에는 본래 티끌이 없는데 깨끗한 그 성품에 무슨 흔적이 있겠으며, 처음부터 덮이지 않았는데 무엇이 다시 나타나겠는가. 이 광명은 허망한 것도 아니요 진실한 것도 아니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울리고 이르시되,
눈 밝은 사람 앞에 어두움이 석 자로다.
또 말씀하시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백 가지 지혜가 하나의 무심(無心)만 못한 것이니, 그 마음에 집착이 없으면 뒷생각이 저절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심의 법[無心法]을 얻으려거든 그 마음이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되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등 여러 하늘이 밟고 가거나 오더라고 그 모래는 기뻐하지 않고, 소․말․개․돼지․독사․개미․땅강아지들이 밟고 가거나 오더라도 그 모래는 성내지 않으며, 금․은 등 보물과 향․꽃 등을 거기에 뿌리더라도 그 모래는 탐내지 않고, 썩고 더러운 물건들을 던지더라도 그 모래는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 마음 쓰는 것[用心]도 그러해야 하나니, 만일 단박에 무심(無心)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겁을 두고 수행하더라도 끝내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다음에는 모두 버리는 것이다. 안팎의 마음과 몸을 모두 버리고 지금까지 지은 복덕(福德)도 모두 버리며 모든 경계에 마음이 집착함이 없는 것을 모두 버림이라 한다.
금강경(金剛經)에 말한 바와 같이,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過去心不可得] 하였으니 그것은 과거를 버리는 것이요, 현재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現在心不可得] 하였으니 그것은 현재를 버리는 것이며, 미래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未來心不可得] 하였으니 그것은 미래를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삼세(三世)의 일을 모두 버려야 비로소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위에서 말한 무심(無心)과 버림의 궁극 목적은 부처되는 데[成佛]에 있다.
그런데 부처에는 삼신(三身)이 있으니 이른 바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다. 법신불은 자성(自性)의 허통(虛通)한 법을 말하고, 보신불은 일체의 청정한 법을 말하며, 화신불은 육도만행(六度萬行)의 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법신불은 설법하되 언어․문자․음성․형상 등을 빌지 않고 다만 자성(自性)의 허통(虛通)한 법만을 말할 뿐이니 그러므로 '가히 말할 법 없는 것이 바로 설법인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보신불과 화신불은 설법하되 언어․문자 등을 빌어 오직 세간․출세간의 법만을 말하므로 '그것은 참 부처가 아니며, 또 설법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다.
위에서 삼신불(三身佛)을 말하였지만 그것은 다 한 정명[一精明]에서 나온 이치이니, 한 정명이 나뉘어져 육화합(六和合)이 된다. 한 정명이란 마음이요, 육화합이란 육근(六根)이다. 육근(六根)은 다 진(塵)과 합하는 것이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눈은 빛깔과 합하고 귀는 소리와 합하며, 코는 냄새와 합하고 혀는 맛과 합하며, 몸은 감촉과 합하고 뜻은 법과 합한다.
이렇게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 화합해 육식(六識)을 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십팔계(十八界)다. 그러나 만일 이 십팔계(十八界)가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알면 그 여섯 가지 화합을 거두어 한 정명[一精明]이 될 것이다. 이 한 정명[一精明]이란 곧 마음[卽心]이다.
옛날 세존(世尊)께서 가섭(迦葉)을 불러 자리를 나누어 주고 마음을 전하시니 그것이 곧 말을 떠난 설법이다. 만일 그 분부하신 도리를 깨우쳐 알면 아승지겁(阿僧祗劫)을 지내지 않더라도 곧 부처의 자리[佛地]에 오를 것이다.
주장자를 세워 법상을 한 번 울리고 이르시기를,
이 삼계(三界)의 불타는 집에 누가 그 큰 법왕(法王)인고?
그는 석가도 아니요 미륵도 아니다. 오직 대중의 눈동자에 맡기노라.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