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2.

동안거 반산림 법어-해인사 가야총림-효봉스님-1949년(己丑年) 12월 1일

1949년(己丑年) 12월 1일
동안거 반산림 법어-해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일체(一切)가 범부의 법[凡夫法]인데 범부가 알지 못하며, 일체(一切)가 성인의 법[聖人法]인데 성인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범부라도 그것을 알면 그는 곧 성인이며, 성인이라도 그것을 모르면 그는 곧 범부이니라. 이와같이 이 한 이치[一理]에 두가지 뜻[二義]이 있으니, 만일 이것을 가려내면 그는 무의법(無爲法)에 들어가리라.
결제(結制)한 지도 이미 달 반이 지났는데 오늘 대중의 용심(用心)은 어떤 경지에 있는가. 깨달음을 등지고 번뇌와 합하지나 않았는가? 안팎의 마음과 경계가 훤하여 서로 걸리지 않는가? 공안(公案)을 참구하는 이외의 일은 모두 마업(魔業)인 줄을 아는가? 아침 저녁으로 조금이라도 게으르지 않는가? 주림과 추위에 생각이 흔들리지 않는가?
언제나 살펴보고 부지런히 돌이켜 보다가 조금이라도 습기(習氣)가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곧 쉴 것이요, 부디 그것을 따르지 말고 또 그것을 없애려고도 하지 말라. 만일 습기를 따르지 않으면 범부의 정(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요,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이승(二乘)의 단혹(斷惑)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다만 심성(心性)과 상응(相應)하면 깨달음의 지혜가 스스로 뚜렷이 밝아질 것이다.
또 옛 사람의 예를 들어 말하리라. 옛날 분주(汾州) 무업선사(無業禪師)는 학인이 도를 물을 때마다 늘 답하기를 '망상하지 말라[莫妄想]. 망상하지 말라[莫妄想]'하였다. 어느날 감원(監院)이 선사에게 말하기를 '세상에서 말하기를, 화상의 불법은 다만 일구(一句)뿐이라 합니다. 지금부터는 쉬라고 하십시오[休得也]'하였다. 그 뒤로 선사는 어떤 학자이건 도를 물으면 늘 답하기를 '쉬라'하였다.
그러면 여기 모인 대중은 일체의 망상을 다 쉬었는가? 우리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잘 때까지 그 하는 일이란 모두 망상뿐이며, 심지어 꿈속에서도 또한 망상이니, 망상이 한 번 일면 천만 가지가 모두 착각이어서 번뇌의 문을 열고 청정한 세계를 더럽히게 된다.
그러므로 그 망상의 근본을 알면 당장에 쉬게 되리니, 그것은 바로 청정한 본원[淸淨本源]이 되고 천진의 묘도[天眞妙道]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망상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 삼계(三界)에 윤회하고 사생(四生)에 빠져 여기서 나와 저기에 들어가고, 저기서 나와 여기에 들어오면서 잠깐도 쉬지 못
할 것이다.
나는 오늘 대중과 좁은 길에서 만났으니, 여러 대중은 저 무업선사(無業禪師)와의 한 가닥 인연을 생각하고 이 산승(山僧)의 두 글귀 게송을 외우라.
 
망상하지 말라, 부디 망상하지 말라
모르겠구나 한종일 누구 위해 그리 바쁜고
만일 바쁜 그 속의 참 소식을 알면
한 송이의 연꽃이 불속에서 피리라.
 
쉬어라, 어서 쉬어라
덧 없는 이 환질(幻質)이 얼마나 가리
내 집 속에 천진불(天眞佛)이 거기 있거니
부디 헐떡거리면서 밖을 향해 찾지 말라.
 
또 말씀하시기를,
 
삼업(三業)의 청정함을 부처가 세상에 나왔다 하고
삼업(三業)의 더러움을 부처가 세상에서 멸했다 하네
자성과 부처[自性佛]를 친견코자 하려거든
오로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항상 깨끗이하라.
 
이 말은 사람을 속이는 말이 아니니 부디 잊지 말고 잘 명심하라.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