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6.

시식병(施食屛)-효봉스님-1945년(乙酉年) 10월 25일-송광사

시식병(施食屛)


1945년(乙酉年) 10월 25일-송광사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이 덧없어 다 생멸(生滅)하는 법이니 생멸이 없어지면 적멸(寂滅)이 즐거움이다'고 하였다. 그러면 그 적멸의 즐거움이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요.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공(空)이 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성립되지 않는다면 필경 어떤 것인고? 석가 늙은이가 살을 베어 부스럼을 만들었도다.

그러나 내 견해는 그렇지 않다. 즉 모든 일이 유상(有常)하여 다 적멸한 법이다. 적멸이 그러하기 때문에 생멸이 즐거운 것이다. 이 적멸의 즐거움은 적멸이 나타난 이후의 일이 아니니 누가 그것을 받으며 누가 그것을 받지 않는가? 생멸과 적멸이 모두 상락(常樂)이니 만일 거기에 두 가지 견해(見解)가 있으면 즐거움이 변해 괴로움이 될 것이다.

아, 어떤 이는 생멸(生滅)을 떠나 적멸(寂滅)을 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적멸을 취하고 생멸을 버리기도 하는데, 이런 소견(所見)으로는 적멸이 바로 생멸이며 생멸이 바로 적멸임을 알지 못한다. 바꾸어 말하면, 생멸 밖에 따로 적멸이 없고 적멸 밖에 따로 생멸이 없다. 적멸은 생멸의 본체(本體)요 생멸은 적멸의 작용(作用)이니 본체는 작용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작용은 본체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임을 알면 떠나고 구하거나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아주 없어질 것이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열반의 참 즐거움[涅槃眞樂]을 어디서나 수용(受用)할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가.

백설당(白雪堂)에서 曉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