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2.

상당법어-해인사 가야총림-효봉스님-1949년(己丑年) 6월 15일

1949년(己丑年) 6월 15일


상당법어-해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이 산승이 공문(空門)에 몸을 던진 지 이제 이십오(二十五) 년이 되었다.

그동안 신심(信心) 있는 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옷은 얼마나 되며 시주로부터 받은 음식은 얼마나 될 것인가. 신심 있는 시주의 힘으로 집을 지어 거기서 받은 편의는 얼마나 되며, 신심 있는 시주에게서 받은 약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런데 그 이십여 년 동안에 내가 한 일은 무엇인고? 부처도 몰랐고 조사(祖師)도 몰랐으며, 선(禪)도 모르고 교(敎)도 몰랐다. 그러나 이 산승은 모름[不識]이란 두 글자[二字]로 인해 위에서 말한 시주의 네 가지 은혜[四事施恩]를 다 갚은 것이다. 왜냐하면 모름이란 이 두 글자에는 두 가지 글귀가 있으니 첫째는 천하(天下) 사람들의 혀끝을 끊은 글귀요, 둘째는 인천(人天)의 눈을 활짝 열게 한 글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 모인 대중들이 만일 이 두 글자의 뜻을 바로 드러낸다면 그는 나와 함께 밑 없는 배[無底船]를 타고 물결 없는 바다[不波海]를 건널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우선 삼십 년(三十年) 뒤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게송을 읊으시되,



메아리 없는 골짝에 어떤 사람 있어

늙지도 병들지도 또한 죽지도 않네

내 이제 그에게 생년월일(生年月日) 물을니

손을 들어 멀리 한 조각 땅[一片地]을 가리키네.



법상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