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2.

하안거 결제법어-해인사 가야총림-효봉스님-1949년(己丑年) 4월 15일

1949년(己丑年) 4월 15일
하안거 결제법어-해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 때는 바야흐로 첫 여름이 되었다. 선객(禪客)들이 구름처럼 모여 현묘(玄妙)한 법을 듣고자 하니 바로 이 때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천성(千聖)이 눈을 활짝 뜨니 이 대지에는 조그만 티끌도 없고, 앉아서 조사(祖師)의 관문을 뚫으니 온 누리에 갈 길이 없도다.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다시는 더 할말이 없겠으나 그렇지 못하면 이 산승(山僧)의 다음 게송을 들으라.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다시는 사방으로 떠돌지 말라
여섯 나라만 평정(平定)할 수 있다면
누가 내 진군(眞君)을 어지럽게 하리.

'결제 법문은 이것으로 마친다'하고 또 말씀하시기를,

출가한 대중은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의식(衣食)을 구하려 하는가, 명리(名利)를 구하려 하는가, 재색(財色)을 구하려 하는가? 그 모두가 아니라면 그럼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오직 한 가지 일[一件事]이 있으니 이제 내가 그대들을 위해 말하리라.
자기 한 몸만을 위해 머리를 깍고 물들인 옷을 입으며 계율을 지키고 아란야(阿蘭若 : 寂靜處)에 살면서 해탈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참 출가(出家)라 할 수 없다.
크게 정진하는 마음을 내어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고, 계율을 깨뜨리는 이로 하여금 청정한 계율에 머물게 하고, 생사에 윤회하는 중생들을 잘 교화하여 해탈을 얻게 하며, 광대한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 : 慈․悲․喜․捨]으로 일체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하고, 일체 중생들을 모두 큰 열반에 들게 하여야 비로서 참 출가(出家)라 할 수 있다. 자기 한 몸만의 해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自利)․이타(利他)의 행이 원만하여야 마침내 유한(遺恨)이 없을 것이다.
또 사슴이 기린되고 닭이 봉되며, 뱀이 용되고 자라가 거북되며, 개가 사자되고 범부가 성인된다는 것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사람으로서 스님이 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여러 겁 동안의 은애(恩愛)가 깊고 무거운 그 부모와 형제와 처자를 모두 멀리 여의고 출가하여 산에 들어와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으면서 일대사(一大事)를 환히 깨달아야 네 가지 중한 은혜[四重恩]를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사람의 말에, 금불(金佛)은 화로[鎔鑛爐]에 견뎌내지 못하고 목불(木佛)은 불에 견뎌내지 못하며 토불(土佛)은 물을 견뎌내지 못한다 하였으니, 그 세 부처는 모두 참 부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대중은 이번 여름 안거 동안에 화로에 들어가도 녹지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풀리지 않을 그런 참 부처를 제각기 조성(造成)해야 할 것이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