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己丑年) 4월 1일
상당법어-해인사 가야총림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마음과 짝하지 말라. 무심(無心)하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하니라. 만일 마음과 짝하게 되면 움쩍만해도 곧 그 마음에 속느니라.
그러므로 이조(二祖) 혜가(慧可)가 달마대사(達摩大師)에게 '제자의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할 때 달마대사는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 주마'라고 하였다. 혜가가 '안이나 밖이나 중간에서 아무리 그 마음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하자 달마는 '그대 마음을 이미 편하게 해 주었노라'라고 하였다.
이 도리는 마음을 찾아 마음이 없음을 알았으니 그것은 편안한 마음을 찾은 것이므로 어디선들 편하지 않겠는가. 그로부터 허공이 홀로 드러나 여전히 봄이 와서 꽃이 피었던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 세존(世尊)께서 멸도(滅度)한 지 삼천 년이 가까운데 바른 법[正法]이 지금보다 더 쇠퇴한 적은 없었다. 왜 그러냐 하면 선교(禪敎)의 무리들이 제각기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교학자(敎學者)들은 마치 찌꺼기에 탐착하여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는 것과 같아서, 교(敎)를 말할 때에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깨달아 들어가는 문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곧 사견(邪見)에 떨어져 있으며, 선학자(禪學者)들은 이른바 본래부터 부처[本來佛]가 되었으므로 미혹(迷惑)도 없고 깨침도 없으며, 범부도 없고 성인도 없으며, 닦을 것도 없고 증(證)할 것도 없으며, 인(因)도 없고 과(果)도 없다 하여, 도국질과 음행과 술 마시기와 고기 먹기를 마음대로 감행하니 어찌 가엾지 아니한가.
이 일을 밝히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바다 속에 들어가 육지를 다닐 수 있는 수단과 번갯불 속에서 바늘귀를 꿰는 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게송을 읊으시되,
사람의 머리는 날마다 희어가고
산빛은 언제나 푸르러 있네
사람과 산을 모두 잊어버리면
흰 것도 없고 푸를 것도 없으리.
주장자를 세워 법상을 한 번 울리고 자리에서 내려오시다.